진도 가볼만한 곳 삼별초 배중손 장군 최후의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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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전라도

진도 가볼만한 곳 삼별초 배중손 장군 최후의 장소

by 칠칠신사 2022. 2. 23.

진도 가볼만한 곳 삼별초 배중손 장군 최후의 장소

 

진도 배중손 사당

전남 진도군 임회면 백동리 15-9

 

현 사당은 삼별초 배중손 장군이 남도석성 전투에 패한 후 굴포 해안 쪽으로 이동하다 당시 바다 뻘밭이었던 이곳에서 최후를 마친 곳으로 전해오고 있다. 배중손(裵仲孫)은 원종 11년(1270년) 5월15일 임유무의 무인정권이 정변에 의하여 붕괴되고, 5월23일 개경에의 환도가 결정되자 삼별초를 중심으로 한 반몽집단은 크게 동요하였다. 개경정부는 이들을 회유하는 한편 5월29일 삼별초를 혁파하는 강경 조치를 취하였다.

 

이에 6월1일 배중손은 삼별초를 움직여 왕족 승화후 온(溫)을 새로운 국왕으로 옹립하고 아울러 대장군 유존혁과 상서좌승 이신손을 좌, 우 승선(承宣)에 임명함으로써 몽고에 복속한 개경정부를 배격하는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였다. 이어 배중손은 삼별초 반몽세력을 규합하여 6월3일 강화도를 출발하여 전라도 서남해안의 진도를 새로운 거점으로 정하고, 고려의 정통 정부를 자임하면서 반몽고 항전을 지속하였다.

 

 

제주도를 그 배후 기지로 확보하는 한편, 진도와 남해 연안이 갖는 전략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차원에서 일본과의 반몽고 연합을 모색하기도 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이듬해인 1271년(원종 12년) 4월 고려·몽고 연합군의 대규모 공격에 의하여 진도가 함락됨으로써 삼별초 정권은 붕괴하였는데, 이때 배중손은 많은 군사들과 함께 최후를 마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삼별초 반몽세력의 일부는 제주도로 탈출하여 1273년(원종 14년)까지 반몽 항전을 지속하였다.

 

 

진도의 배중손이 몽고군 공격군 사령관 아해(阿海)에게 진도에 오도록 초청하면서 몽고에 복속하겠다는 제안을 한 점을 들어 그가 몽고와 타협하려 하였다거나, 진도 배중손에 대한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하여 배중손이 1271년4월 이전에 이미 숙청된 상태였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를 신빙하기는 어렵다.

 

일제 이전부터 이곳에 마을 당(堂)이 있었고, 매년 음력 정월 보름에는 농악을 치고 배중손과 삼별초군 그리고 고산 윤선도제를 모셔왔고, 1959년「사라호」태풍으로 당(堂)이 허물어져 방치해 오던 중 굴포 출신 동양화가 백포 곽남배씨가 주민 성금과 사비를 들여 현 위치에 5평 규모의 사당과 신당비를 세우고 굴포 주민들이 제를 모셔왔다.

 

1980년대 말 당시 남선리장 강진간이 주축이 되어 4개 마을 청년들이 뜻을 모아 현 위치에 고산 윤선도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주민들의 성금으로 비를 세우고(91.4.6) 그 뜻을 기렸다.

 

1996년 배중손 사당 재건립에 필요한 예산을 전라남도에 건의하여 1998년 12월부터 1999년 6월까지 사업을 추진하였고, 1999년 8월에 배씨 대종회에서 종친 성금을 모금하여 배중손장군 동상을 건립하고 진도군에 기증하였다.

 

 

윤선도 기적비

 

진도군 임해면에 60만㎥ 축구장 300배 크기의 간척지를 개척했다. 간척지는 신동마을에서 연동마을까지이다. 민간척사업 1호의 간척지인 셈이다. 수많은 사행착오 끝에 만들어진 간척지는 농민에게 무상으로 지급되었다. 이런 고산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굴포리에 기적비를 세웠다. 굴포리, 남선리, 신동리, 백동리 주민들은 360년이 지난 지금도 매년 음력 1월15일 동제를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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