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경제지 조선 최고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01. 개요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 풍석(楓石) 서유구(徐有榘, 1764∼1845)가 저술한 농서로서 영농방법 및 정부의 농업 정책을 비롯한 어업·의학 등 농촌의 생활전반을 다룬 정책 서적이다. '임원(林園)'은 농촌을 뜻하고, '경제(經濟)'는 살림살이를 뜻하므로, 임원경제지란 농촌의 살림살이에 관한 서적을 말한다.
02. 저자의 약력
18세기, 19세기 실학 시대는 정약용을 비롯, 이익, 박제가, 정약전, 김정희 등 걸출한 인물을 많이 나왔고, 현대 학자들도 이들의 삶과 저서를 많이 연구했지만, 유독 서유구는 조명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사실 당대 가장 지명도가 높은 유명한 인물이 서유구였다.
그 이름이 조선왕조실록에만도 64건이 있고, 일성록엔 505건, 승정원일기에는 1,273건, 규장각 일지인 내각일력에는 무려 2,788건이나 나온다. 정조가 낸 시경 강의 시험에서 가장 뛰어난 성적으로 수석을 차지한 사람도 정약용이 아니라 서유구였다. 다만, 서유구가 앞에서 거론한 실학자들보다 관직생활이 길었던 것도 감안해야 한다. 내직만 꼽아도 이조, 병조, 형조, 예조판서, 대사헌, 대제학, 좌우참찬 등, 삼정승을 제외한 대부분의 직책은 다 거쳤다.
집안 또한 대대로 경화세족 가문으로 할아버지 서명응은 영조, 정조 시대의 명망 있는 학자로 고사십이집, 본사, 보만재총서 60책 등을 남겼고, 정조가 “조선 400년 동안에 이런 거편은 없었다”고 최고의 평가를 내린 책들이다. 작은 할아버지 서명선은 영조 말년 홍인한을 필두로 한 척신세력들이 당시 세손이던 정조의 대리청정을 방해하는 것을 비판하는 내용의 상소를 올려 정조가 무사히 즉위할 수 있도록 도운 일등공신이다. 『규합총서』의 저자 빙허각 이씨 또한 서유구의 하나뿐인 형수였고, 서유구 자신도 이전부터 완영일록, 화영일록 등 여러 책들을 저술하였다.
이런 집안 출신에다 엄청난 능력으로 전통문화 콘텐츠의 보고를 만들었지만 그 방대함과 전문성 때문에 지금껏 한국고전번역원은 물론 누구 하나 번역에 손을 대지 못했고, 결국 엄두를 못내는 집대성의 서적이 되었다. 그 밖의 저술로는 정조의 명으로 조선에서 출판한 도서의 목판을 조사한《누판고》와, 전라도관찰사로 재직할 때는 기민을 구제하기 위해 고구마 재배법을 기록한 《종저보》를 간행하였다. 이 밖에도 개인 문집으로 《풍석고협집》, 《금화지비집》, 《번계시고》, 《금화경독기》와 전라도관찰사와 수원유수시절의 업무일지인 《완영일록》과 《화영일록》이 전한다.
03. 책의 성격
조선에서 살아갈 때 필요한 모든 것이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농업부터 시작하여 의학, 무술, 방적, 요리, 악기 다루는 법, 제사 지내는 법, 낚시 하는 법 등등 별의별 지식이 망라되었다. 물론 서유구가 모두 지은 것은 아니다. 이미 존재하던 같은 농서인 증보산림경제 및 조선과 중국, 일본, 심지어 서양에서 들여온 서적까지 종합하여 조선 실정에 맞게 뺄 것은 빼고, 자신과 다른 유학자들의 연구를 더하고 가다듬어 만든 성격이 강하다. 다만 온전히 인용한 것은 아니고 자신의 저술 및 의견의 비중이 상당히 높다.
서유구가 이렇게 노력한 결과 말도 안 되는 책이 나왔다. 동의보감마저도 틀린 부분이 있다면서 동의보감이 인용한 원전을 구해 비교분석한 후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수정한 부분도 있고, 한 가지 치료법에 대해 의학서적 간 다른 부분은 전부 파헤쳐서 겹치는 부분을 제외하고 확실하다고 판단되는 것만 골라서 썼다. 이런 지난한 작업의 결과를 보면 괴물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것도 거의 혼자 다했다.
04. 내용
113권 52책. 필사본. 일명 ≪임원십육지 林園十六志≫ 또는 ≪임원경제십육지 林園經濟十六志≫라고도 한다. 이 책은 중국과 우리 나라 생물과학의 거의 모든 분야를 집대성한 새로운 백과전서적 박물학서이다. 그것은 ≪농사직설≫·≪동의보감≫·≪산림경제≫·≪택리지≫·≪고사촬요≫와 ≪고사신서 攷事新書≫·≪과농소초 課農小抄≫로 이어지는 종래의 조선 농학과 박물학의 체계 위에, 800여 종의 문헌을 참고하여 이를 확대 발전시켜 19세기 중기의 조선사회가 요구하는 보다 완벽한 박물학서로서 완성시켰기 때문이다.
서유구는 관직을 떠난 뒤, 파주 장단 집에 내려와 살면서 몸소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실천, 82세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임원경제지를 집필했다. 총 113권 54책, 252만 7083자로 개인이 저술한 단일 저작물로는 국내에선 최대 규모다. 관념에 치우친 조선 유학자의 학문 태도를 버리고 직접 음식을 차리고 옷을 짜보고 농기구를 만들며 조선시대 생활 전반을 기록으로 남겼다고 한다. 서유구는 당시 유학자들의 태도를 토갱지병(土羹紙餠, 흙으로 만든 국, 종이로 만든 떡)과 같다고 비판했다.
이 책에 집약된 서유구의 박물학은 무엇보다 많은 문헌들을 자신의 학문적 체계 속에 소화시켜 자기의 이론으로 쌓아 올린 데 있다. 특기할 것은 이 과정에서 인용서를 분명히 밝혀 이미 실전(失傳)된 우리 고유의 저서 일부를 부분적이나마 재구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은 한국과학기술사 또는 농업기술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이 책의 본지는 서울대학교 도서관에 유일본이 소장되어 있고, 광복 전에 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전사본(轉寫本)이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괘지(罫紙)에 쓴 저자의 가장원본(家藏原本)은 일본 오사카(大阪)의 부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영인본으로는 1966년에 서울대학교에서 고전총서로 간행된 것이 있다.
그야말로 서유구가 36년간 혼자 만든 조선판 브리태니커와 같다. 아들 서우보가 많은 부분을 도왔다. 그래도 정약용처럼 출판소 차린 정도는 아니고, 그마저도 아들 서우보(徐宇輔, 1795-1827)는 서유구보다 훨씬 먼저 죽었다.
이런 책의 성격상 이공계 실력에 더해 한문까지 능숙하게 해독할 수 있는 문과적 실력까지 겸비해야 하는데 이런 사람들은 드물고, 대중을 위해 번역작업까지 하기는 힘들다. 제대로 된 번역서가 없으니 대중이 모르는 것도 당연하다. 이래저래 정약용과 자주 비교되는 서유구이다.
이 책은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듯이, 전원생활을 하는 선비에게 필요한 지식과 기술, 그리고 기예와 취미를 기르는 백과전서로 생활과학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온갖 곡식 농사법과 농기구, 채소와 약초 재배, 온갖 국화류와 화훼 재배법, 과실수와 나무 재배, 각종 옷 직조법, 염색법, 가축 사육법, 165가지에 이르는 전통주, 전통 음식 요리법, 전통 건축, 보양법 등을 16개 분야로 정리했다. 또한 인용 목록을 정리했는데, 인용 서목 수가 893종에 달한다. 이 책은 113권을 16개 부문으로 나눈 논저로 이루어졌는데, 그 내용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05. 구성
① 본리지(本利志, 권1∼13)
밭 갈고 씨 뿌리며 거두어들이기까지의 농사 일반에 관한 것을 다루고 있다. 전제(田制), 수리(水利), 토양지질, 농업지리와 농업기상, 농지개간과 경작법, 비료와 종자의 선택, 종자의 저장과 파종, 각종 곡물의 재배와 그 명칭의 고증, 곡물에 대한 재해와 그 예방, 농가월령(農家月令), 농기도보(農器圖譜), 관개도보(灌漑圖譜) 등에 걸쳐 서술했다.
② 관휴지(灌畦志, 권14∼17)
식용식물과 약용식물을 다루고 있다. 각종 산나물과 해초·소채·약초 등에 대한 명칭의 고증, 파종시기와 종류 및 재배법 등을 설명하고 있다.
③ 예원지(藝畹志, 권18∼22)
화훼류의 일반적 재배법과 50여 종의 화훼 명칭의 고증, 토양, 재배시기, 재배법 등에 대하여 풀이하고 있다.
④ 만학지(晩學志, 권23∼27)
31종의 과실류와 15종의 과류(瓜類), 25종의 목류(木類), 그 밖의 초목 잡류에 이르기까지 그 품종과 재배법 및 벌목수장법 등을 설명하였다.
⑤ 전공지(展功志, 권28∼32)
뽕나무 재배를 비롯해 옷감과 직조 및 염색 등 피복재료학에 관한 논저이다.
⑥ 위선지(魏鮮志, 권33∼36)
여러 가지 자연현상을 보고 기상을 예측하는 이른바 점후적(占候的) 농업기상과 그와 관련된 점성적인 천문관측을 논하였다.
⑦ 전어지(佃漁志, 권37∼40)
가축과 야생동물 및 어류를 다룬 논저로서, 가축의 사육과 질병치료, 여러 가지 사냥법, 그리고 고기를 잡는 여러 가지 방법과 어구(漁具)에 관하여 설명하였다.
⑧ 정조지(鼎俎志, 권41∼47)
식감촬요(食鑑撮要)는 각종 식품에 대한 주목할 만한 의약학적 논저와, 영양식으로 각종 음식과 조미료 및 술 등을 만드는 여러 가지 방법을 과학적으로 설명하였다.
⑨ 섬용지(贍用志, 권48∼51)
가옥의 영조(營造)와 건축기술, 도량형기구와 각종 공작기구, 기재·복식·실내장식·생활기구와 교통수단 등에 관해서 중국식과 조선식을 비교해 우리 나라 가정의 생활과학 일반을 다루고 있다.
⑩ 보양지(葆養志, 권52∼59)
도가적(道家的) 양성론을 편 논저로, 불로장생의 신선술(神仙術)과 상통하는 식이요법과 정신수도를 논하고, 아울러 육아법과 계절에 따른 섭생법을 양생월령표(養生月令表)로 해설하였다.
⑪ 인제지(仁濟志, 권60∼87)
의(醫)·약(藥) 관계가 주로 다루어져 있으나 끝부분에는 구황(救荒) 관계가 다루어지고 260종의 구황식품이 열거되어 있다.
⑫ 향례지(鄕禮志, 권88∼90)
지방에서 행해지는 관혼상제 및 일반 의식(儀式) 등에 관한 풀이이다.
⑬ 유예지(遊藝志, 권91∼98)
선비들의 독서법 등을 비롯한 취향을 기르는 각종 기예를 풀이한 부분이다.
⑭ 이운지(怡雲志, 권99∼106):선비들의 취미생활에 관해 서술한 것이다.
⑮ 상택지(相宅志, 권107·108):우리 나라 지리 전반을 다룬 것이다.
⑯ 예규지(倪圭志, 권109∼113)
조선의 사회경제를 다룬 것으로 양입위출(量入爲出)·절생(節省)·계금(戒禁)·비예(備豫) 등을 다룬 것과 무역이나 치산(置産) 등을 다룬 화식(貨殖) 등이 논술되어 있다.
06. 기타
16지 중 번역이 완료된 것도 있으나 대부분은 아직 번역 중이다. 특히 전질 번역은 임원경제연구소가 완역을 목표로 예약 구매 및 후원을 받는 중이다. 지금도 번역 중인데 꽤 시간이 오래 걸린다. 중간에 한 번 엎어졌는지 출판사도 바뀌었다. 2003년부터 번역을 시작했지만 아직 나머지는 어찌될지 모른다.
일단 사극 고증에 도움이 될 것만은 확실하다. 본리지는 완역되어 관심 있는 농부들은 유기농이나 친환경 농사에 관련하여 연구 중이다.
이 책은 지리와 관한 입체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지도 및 사진과 삽화를 대거 추가했다. 총 275점의 고지도와 현대지도에 살기 좋은 명당들의 위치를 표시한 것이다. 특히 조선의 지리를 입체적으로 잘 드러낸 《대동여지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으며 모두 232점(전체 지도 중 84%)이나 된다. 이 외에도 《해동지도》17점, 《1872년 지방지도》6점, 《동여도》4점, 《팔도군현지도》3점,《청구도》2점,《조선지도》2점 《여지도》1점, 《광여도》1점, 《팔도지도》1점, 《삼한일람도》1점,《비변사인방안지도》1점, 《경기읍지》1점,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지도 3점 등을 실었다. 또한 사진 115점과 삽화 37점까지 추가되어 도록(圖錄)을 방불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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