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 두타산, 고려 '제왕운기'가 탄생한 성지 이승휴 유적
본문 바로가기
여행/강원도

삼척 두타산, 고려 '제왕운기'가 탄생한 성지 이승휴 유적

by 칠칠신사 2025. 6. 1.

 

강원도 삼척의 두타산 깊은 곳에는 우리 역사의 소중한 보물, 『제왕운기(帝王韻紀)』가 탄생한 의미 깊은 장소가 있습니다. 바로 사적 제421호 '삼척 두타산 이승휴 유적'인데요. 이곳은 고려 시대의 뛰어난 문인이자 정치가인 동안거사(動安居士) 이승휴(李承休, 1224~1300)가 벼슬을 버리고 내려와 학문에 정진했던 터전입니다. 고려 말 격동의 시기, 한 학자의 강직한 삶과 위대한 저술 활동이 펼쳐졌던 이 공간으로 함께 떠나볼까요?


강직한 선비, 이승휴의 귀향과 『제왕운기』

이승휴는 12세에 학문을 시작하여 1252년 과거에 급제하며 관직에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그의 강직한 성품 탓에 여러 번 좌천되는 고난을 겪었죠. 결국 고려 충렬왕 13년(1287년) 무렵, 그는 모든 벼슬을 버리고 어머니의 고향인 삼척 두타산 구동(龜洞)으로 돌아와 은거를 택합니다.

이곳에서 그는 『제왕운기』를 비롯해 『내전록』, 『동안거사집』 등 주옥같은 저술들을 남겼습니다. 특히 『제왕운기』는 중국 역사와 우리나라 역사를 칠언시와 오언시로 엮은 서사시 형태로, 우리 민족 역사의 독자성과 정체성을 밝히고 계승 관계를 체계화한 매우 귀중한 자료입니다. 원나라의 정치적 간섭이 심화되던 시기에 민족적 자부심을 드러낸 자주적인 역사서라는 평가와 함께, 다양한 시각으로 연구되고 있는 작품입니다.

 


이승휴의 삶의 터전, 용안당과 보광정의 흔적

이승휴는 두타산 구동에 '용안당(容安堂)'이라는 집을 짓고 생활했습니다. 이 이름은 도연명의 『귀거래사』 구절에서 따온 것으로, 자연 속 은거를 즐기고자 했던 그의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만년에는 불교에 몰입하여 용안당의 이름을 '간장사(看藏寺)'로 고치기도 했습니다.

그는 용안당 남쪽에 우물을 파 '표음정(瓢飮渟)'이라 불렀고, 그 위에 정자를 지어 '보광정(葆光亭)'이라 했습니다. 보광정 아래에는 연못을 만들어 '지락당(知樂塘)'이라 이름 붙이며 자연과 어우러진 삶을 살았죠. 이러한 기록들은 1998년 발굴 조사를 통해 절터와 연못의 흔적, 그리고 청자 가마터 등이 발견되면서 사실로 확인되었습니다.

이 유적지에는 동안 이승휴 상징 조형물과 그의 위패를 모신 동안사(動安祠)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또한, 옛 방식 그대로 곡식을 찧던 굴피지붕의 통방아천은사 영지 등 이승휴의 삶과 사상이 깃든 공간들이 남아 있어 당시의 분위기를 짐작하게 합니다.

고려 말 격동의 시기, 외세의 간섭 속에서도 꿋꿋이 민족의 역사를 기록하고 자주 의식을 고취하고자 했던 이승휴. 그의 깊은 학문과 강직한 정신이 살아 숨 쉬는 삼척 두타산 이승휴 유적지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며, 고려의 마지막 혼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요?

 


 

댓글